♤ -- 운명에 대하여
김종태
나는 동네 입구에 있는 몇백 년 된 고목을 보면서 가끔
사람보다 나무가 위대하다고 생각했었다. 인간은 백 년을
살기 힘든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저 나무는 우로풍상을
몸으로 겪으며 저렇게 버텨왔구나.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몇천분의 일이라는 확률일
뿐이란 걸 알았다. 저 나무 숱하게 씨를 뿌리고 그렇게
살았어도 저 홀로만 살아남았으니까.
태릉 못 미쳐 새술막 달랑고개 앞에 처녀 엉덩이만한
솔밭이 있었다. 주변 허름한 동네 앞에 그걸 듯하게 자리잡아
아주 좋은 휴식터가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마지막 해에
그 동네가 재개발이 되면서 솔밭이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솔밭이 거의 다 잘려나가나보다 했는데 웬걸 손수건만큼
솔밭을 남겨 아파트단지의 공원으로 쓴단다. 90퍼센트는
무참히 뽑혀나갔는데 남은 10 퍼센트의 소나무들은 영생을
보장받은 것이다. 잘려나간 놈이나 영생을 얻은 놈이나
자기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우리는 저 뽑힌 소나무나 남겨진 소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우리의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지금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이 내 뜻이랴. 남겨진 소나무가 자신의 의지로
살아남았다고 좋아한다면 코웃음을 치듯이 뽑힌 나무가
울면서 자기 운명이었다면 또 얼마나 비웃으랴. 그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이려니. 인간이 저 한 그루 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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