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글

[스크랩] ♤ -- 운명에 대하여

우리다운 2007. 1. 13. 09:38
 



  ♤   -- 운명에 대하여



                               김종태



  나는 동네 입구에 있는 몇백 년 된 고목을 보면서 가끔

  사람보다 나무가 위대하다고 생각했었다. 인간은 백 년을

  살기 힘든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저 나무는 우로풍상을

  몸으로 겪으며 저렇게 버텨왔구나.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몇천분의 일이라는 확률일

  뿐이란 걸 알았다. 저 나무 숱하게 씨를 뿌리고 그렇게

  살았어도 저 홀로만 살아남았으니까.


  태릉 못 미쳐 새술막 달랑고개 앞에 처녀 엉덩이만한

  솔밭이 있었다. 주변 허름한 동네 앞에 그걸 듯하게 자리잡아

  아주 좋은 휴식터가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마지막 해에

  그 동네가 재개발이 되면서 솔밭이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솔밭이 거의 다 잘려나가나보다 했는데 웬걸 손수건만큼

  솔밭을 남겨 아파트단지의 공원으로 쓴단다. 90퍼센트는

  무참히 뽑혀나갔는데 남은 10 퍼센트의 소나무들은 영생을

  보장받은 것이다. 잘려나간 놈이나 영생을 얻은 놈이나

  자기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우리는 저 뽑힌 소나무나 남겨진 소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우리의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지금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이 내 뜻이랴. 남겨진 소나무가 자신의 의지로

  살아남았다고 좋아한다면 코웃음을 치듯이 뽑힌 나무가

  울면서 자기 운명이었다면 또 얼마나 비웃으랴. 그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이려니. 인간이 저 한 그루 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출처 : ♤ -- 운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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