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에이즈 없는 세상을 꿈꾸며 -에이즈119. 이미영 -

우리다운 2006. 11. 14. 06:46

에이즈 감염에다 췌장암 말기에 있는 남편을 혼자 두고 일을 나가기가 너무 가슴 아프다며 부인은 시종일관 눈물을 글썽였다.


챙겨주는 식사도 먹기 어려운 사람을 혼자 밥 챙겨 먹으라며 두고 나가니 곡기를 끊기는 예사이고, 더욱이 복수까지 차서 거동도 어려운 요즘은 전화벨 소리에도 ‘혹시나…’ 가슴이 내려앉는단다.


부인의 설명이 굳이 없이도 한 숨 입김에도 날아갈 듯 뼈만 앙상한 그의 몸이며, 그린색을 띤 그의 피부는 영락없는 말기암 환자의 모습이다. 그는 작년에 에이즈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고 올 삼월에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억지로 울음을 삼키던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목소리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글쎄, 췌장암 진단을 받고는 너무 기뻐하며 암이라 다행이라고 하는 거예요."


형제, 친척들과 무엇보다 늘 죄책감으로 바라보아지던 자식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그 죽음에 이르는 병명을 당당히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었다고 했다.


듣고 있던 나도 순간 눈물이 돌고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암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병이 에이즈라니...


그런 그를 붙잡고 더 이상 에이즈는 죽는 병이 아니다. 사회의 그릇된 인식과 오해, 무지가 문제이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그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고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렵게 에이즈 감염인 호스피스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아서 그를 보내며, 부인에게 의지하여 끌려가다시피 하는 그의 뒷모습이 죽음만이 그에게 해방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에이즈에 대한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 나오고 치료법의 발달로 감염인들의 수명이 연장되어 20년을 넘겨 사는 것이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변해가고 있음에도 사회일반의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발견 초창기의 ‘죽는 병’, ‘천형’, ‘죄의 댓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로 인해 에이즈 감염인들은 여전히 진단과 동시에 사회적 죽음, 심리적 죽음을 미리 맞아야 한다.


에이즈, 즉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감염되었다는 것은 우리 몸의 면역이 낮아져서 달리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질병에 대해 인체가 문을 열어 두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태의 에이즈 감염인에게 의료기관은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지지기반이어야 할뿐만 아니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감염인들은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서럽게 느껴야 하는 곳이 오히려 의료기관이라고 답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의료기관의 차별은 소규모의 의료기관 일수록 더욱 심각하여 자신의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가 발견되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환자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종합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감염인에게 진료의뢰서 발급을 거부하기도 하고,

 

한쪽 눈의 라식수술을 한 후 감염사실을 알게 된 의사가 다른 눈의 수술을 못해 주겠다며 제발 다른 병원으로 가달라 감염인을 붙잡고 사정을 하는 일도 있다.


이 외에도 감염인들은 감염인임이 알려짐과 동시에 거의 모든 지지기반을 잃게 된다. 가족, 직장,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온 삶의 경력들…, 그의 이력서에는 오로지 “감염인”만이 기재된다.


우리는 흔히 죽음 앞에 이른 사람에게는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어가는 아들이 내미는 손을 잡아주지 못하는 병이 에이즈이고, 죽은 형제의 시신 인수마저 거부하고 위임장을 펙스로 보내오는 병이 에이즈이다.

 

 그도 모자라 내 가족이 죽은 후 사망원인으로 에이즈가 기재되어 호적에 남아 온 가족이 연좌제에 걸리거나 가문의 주홍글씨로 새겨질까 두려워 수도 없이 문의가 들어오는 병이 에이즈이다.

 

 심지어는 주변의 시선이 두렵고 병수발에 지친 가족들이 감염인을 병원에 입원시킨 후 집 전화며, 휴대전화의 번호를 모두 바꾸고 이사를 가버리는 상황도 발생한다.


감염인들의 어려움은 사회생활, 특히 직장생활에도 영향을 미쳐서 매일 두 세 번씩 먹어야 하는 치료제를 동료들의 눈이 무서워 화장실에 숨어서 먹다가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치료를 단념하고 중증의 환자가 되어 일찍 죽음을 맞게 되는 감염인도 있다.

 

직장을 선택하려 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감염인들이 늘 불안에 떠는 가장 큰 이유는 직장의 정기건강검진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은 성병정기검진을 하는 직종에만 감염인의 취업제한을 두고 있지만, 직장정기건강검진에서 감염사실이 밝혀지면 권고사직을 당하거나 직장 내의 따돌림으로 스스로 직업을 포기하게 되고,

 

혹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감염인들이 직장검진에 에이즈 검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미리 직장을 그만두고 만다. 그 결과 감염인들은 경제적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되고 이는 다시 치료 및 섭생을 어렵게 하여 생존의 문제로 연결된다.


결국 감염인에게 있어서는 신분의 노출이나 경제적 빈곤, 건강의 악화는 모두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서로 상관성을 가지고 악순환한다.

 

 질병사실의 노출과 건강의 악화 등으로 인한 사회생활의 중단은 단순히 그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빈곤을 초래하고, 빈곤은 치료 및 건강관리를 불가능하게 하여 어떤 경우라도 죽음과 맞닿아 있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에이즈는 전파경로에 있어서 B형간염과 같은 병이며 관리에 있어서는 당뇨와 같은 병이다.

 

남편이 B형간염 진단을 받으면 그 아내는 좋다는 음식을 해서 먹이고 피곤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극진히 간호한다. B형 간염이 걸린 남편을, 아버지를 어디서 외도를 해서 병에 걸렸느냐 닥달하지 않으며, 이를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거나 가족과의 단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동일한 전파경로를 가진 에이즈에 대해서는 우리는 다른 결정을 한다. B형간염 걸린 환자, 에이즈 걸린 죄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일컬어 성산업이 발달한 나라라고 한다.

 

 매매춘이 성행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대다수의 남성들이 매매춘을 경험한 일이 있다고 답한 설문도 본 기억이 있다.

 

차이는 매매춘 혹은 외도의 결과이다. 외도나 매매춘을 경험하고도 에이즈에 걸리지 않으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죄책감조차 없이 살아가고, 매매춘의 결과로 에이즈에 걸리게 되면 그는 하루아침에 온 세상에 공개적인 죄인으로 선언된다.


에이즈 감염인들과 5년을 넘게 부비고 살아오면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에이즈는 벌이 아니라 단순한 질병이다.

 

그러나 혹 동의가 안되는 누군가가 있어 감염인에게 성적으로 문란하여서 에이즈에 걸렸다고 한다거나, 에이즈를 죄의 결과라고 한다고 치더라도 에이즈에 걸린 감염인은 받을 벌이 있다면 이미 다 받은 사람이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직장을 잃고, 살아있으되 그 삶이 단지 호흡의 연장선상일 뿐으로 물리적 죽음이 없었을 뿐 심리적, 사회적으로 이미 죽음을 맞았다면…

 

이보다 더 중한 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죄의 댓가인 벌도 충분히 받은 것이다.


사회의 차별과 낙인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에이즈는 사형선고이고 단지 집행의 모양이 “서서히 사형”이다. 우리는 한번 선고된 죄를 두 번 재판하여 두 번 벌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감염인을 동정하거나 너그럽게 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형평성을 요구하는 것이며 질병을 질병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도둑을 맞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둑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에이즈가 두려우면 에이즈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비감염인이 감염인을 염려하여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으니 함께 살자고 말하는 세상, 감염인이 비감염인을 걱정하며 스스로 전파여부를 걱정하는 세상,

 

 에이즈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 내가 꿈꾸는 세상이며 에이즈 없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