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나눔도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다운 2007. 3. 18. 02:09
‘정토마을 불교 호스피스 교육’을 다녀와서

 

내 나이 마흔셋. 언제 어떻게 마흔셋이 됐는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해 놓은 일도 없고, 내 것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도 하나 없는데 세월은 훌쩍 훌쩍 잘도 지나간다. 어떻게 살아야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 삶의 본질일 수 있는 일, 후회하지 않을 일, 내 안의 나와 만날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대체 뭘까? 그런 일이 있기나 하는 걸까?

막상 마흔을 넘기고 보니, 이제는 살아갈 날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초조하고 무상하다. 도시 생활을 접고 산골로 들어와 농사를 짓고 살지만, 그것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할 일 없는 긴 겨울만 되면 늘 나를 괴롭혀서 우울하게 한다.

어느 날 ‘실천’이라는 단어를 종이에 써서 냉장고 문에 붙여 두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다가,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 ‘실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빼고 ‘호스피스 교육’을 받아보기로 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른 이들과 나누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형편이 좀 더 나아져야 할 수 있을 것 같아 미루고 살았는데, 이제는 자꾸 미루지만 말고 구체적인 ‘실천’을 하고 싶었다. 호스피스 교육을 받기 위해 비싼(?) 교육비내고, 7박 8일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서, 남편 홀로 남겨두고 멀리 언양까지 찾아갔으니 뭔가 급하긴 꽤나 급했던 모양이다.

호스피스 교육은 생각지도 않게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호스피스를 위한 기술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수행프로그램이었다. 불교적인 세계관에서 바라본 죽음에 대한 것들을 새벽 4시부터 저녁 열시까지 엄청나게 쏟아부어주는데, 그 와중에 혼란스럽기도 했고, 울기도 많이 울고, 참회도 엄청 했다.

살아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싶어, 불만이나 미움 같은 것들은 이제 전혀 소용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사의 마음이 솟구쳐 또 많이 울었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나임을 알았고, 그래서 다른 이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데 주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죽어가는 다른 이를 돌보기에 앞서 ‘죽어가는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만 치부해도 교육비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일러스트/홍수미)

 

그러나 막상 환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이기심과 부족함은 가감 없이 드러났다. 의식이 없거나, 노환으로 수족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똥을 누는지 오줌을 누는지도 모르고 병실에 누워계신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이 일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돌연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똥을 치우는 것은 차라리 나았다. 태어나서 병들고 죽어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 도망치고 싶었다.

너무 슬프고 비극적이어서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그것이 인간의 삶이긴 하지만, 내가 굳이 그걸 느끼면서 살 필요가 무엇인가? 차라리 이 모든 것들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느끼지도 말면서 그저 나와 우리 가족들이나 잘 돌보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삶의 진실을 받아들일만한 용기도 없고 그릇도 못됐다. 그 앞에서 ‘나눔’이란 턱도 없이 허황된 허영 같기만 했다.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40년 살면서 봉사활동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봉사활동하면 떠오르는 꽃동네에도 한 번 가보지 않았고,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매달 천 원씩 꼬박꼬박 꽃동네에 기부금을 냈다고 해서 맘껏 비웃어주긴 했어도, 정작 본인은 꽃동네에 단돈 백 원도 보태본 적 없이 살아왔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은 외면했고, 삶이 주는 단물만 먹고 싶어 했다. 질병이나 고통이나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친정아버지께서 잠깐 병원에 입원하셨던 것 빼고는 아픈 환자를 쳐다본 적도 별로 없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프고 죽어가고 버림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사람이 무슨 작정으로 호스피스라는 엄청난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서 ‘나눔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모르겠다. 자기자식을 두고도 열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거두어 가난 속에서도 제 자식 못지않게 키우는 부부, 자식이 버린 노인네들을 씻기고 먹이며 자식이 되어 사는 분들은 정말 특별한 분들만 같다. 대체 어디서 그런 자비심이 나오는 걸까. 그들은 부처님의 지혜를 깨달은 보살님이고 천사들일 것이다.

이미 몇 겁 생의 전생에부터 많이 닦고 닦아서 가슴에 보살심이 가득한 분들이나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나 같은 얼치기가 되지도 않게 그분들을 흉내 내려고 해서는 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졌다.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실습기간을 채우기 위해 병원을 오가긴 했지만 마음은 계속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면서 병원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내게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왔다. 집에 돌아와 있으면 병상에 홀로 누워 있을 환자들이 떠오르고,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오늘 종일 나눴던 대화들이 머릿속으로 스치고, 미처 나누지 못한 말들 때문에 안타까웠다. 앙상한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통증이 지금 얼마나 그들을 괴롭히고 있을까 싶어서 가슴이 아팠고, 그 등이라도 어루만져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 그리고야 알았다. 나눔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도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 연습을 통해 몸과 마음에 익숙해지면서 더 잘 나누게 된 거라는 걸, 사랑도 자비도 인생을 받아들이는 용기도 연습을 통해 커진다는 걸…….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의 저자이신 능행스님의 진실하고 절절한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이제 한 달. 나는 이제 막 나눔의 걸음마를 배우려고 하는 문턱에 서 있다. 강의를 듣고, 실습을 했던 시간은 며칠 안 되지만, 그 며칠 안 되는 그 시간들이 내게 속삭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아차릴 것 같다.

“내일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하겠는가?”
“내일 친구가, 아내가, 남편이 죽는다면, 오늘 그를 미워하겠는가?”

대답이 중요한건 아니다. 그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슴속에 맑은 단물이 흐른다. 많이 사랑해야겠다. 그리고 많이 연습해야겠다.




정경아 | 아직은 욕심 많은 40대 아줌마. 남편과 함께 지리산 뱀사골에서 민박집을 하며 농사를 짓고 산다.

 

불교 호스피스 교육은 정토마을(043-298-2258)에서 주관한다. 정토마을에서는 언양에 호스피스 환자를 위한 관자재 요양병원과 호스피스 교육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www.jungtoh.com

 

*이 글은 아름다운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 콩반쪽(2007년 3월호)에 소개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