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화복지`와 `복지문화`
|
김일한 |
‘신용회복지원’이라는 글자가 TV 자막으로 스쳐지나갔다. 순간적으로 ‘복지원’이라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어떤 사회복지시설의 명칭 같이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신용불량자 대책과 관련한 내용을 보도하는 중이었으며, ‘신용회복지원’은 ‘신용회복’과 ‘지원’으로 끊어 읽어야 옳았다.
복지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복지’라는 단어가 특별히 눈에 띈다.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 들었으면 박장대소할 일이다. 소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지닌 일정한 성향을 의미하는 정향(定向)의 문제다. 오랜 체험을 통해 터득된 문화적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복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 이후다. 우리는 서울장애인올림픽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성화를 봉송하는 조현희 선수와 휠체어를 밀던 어린 딸 보람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던 것이다. 장애인 체육활동을 비롯한 장애인 문화복지의 계기는 바로 서울장애인올림픽이다.
그 후 문민의 정부에서는 1996년을 문화복지 원년의 해로 정하고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계층과 소외지역을 위한 체육,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했다. 또 참여정부에 들어서는 사회보장기본법에 의거한 제2차 사회보장장기발전계획으로 참여복지5개년계획(2004~2008)을 내놓고 ‘문화향수 및 참여기회 확대를 통한 복지 구현’을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문화복지’에서 나아가 이제 ‘복지문화’를 생각해볼 때다. 문화란 사회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지식, 신념, 행위의 총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는 바람직한 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예를 들면 정부는 과학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민간주도와 정부후원의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사이언스 코리아는 2004년 제37회 과학의 날(4. 21) 기념식을 통해 선포된 범국민적 과학문화사업의 총칭으로 현재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사업내용은 1대 핵심사업(‘과학문화도시’ 사업)과 3대 중점사업, 6대 주요사업, 3대 기획사업 등 모두 13가지, 연간예산은 약 200~300억 원에 달한다.
사이언스 코리아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과학문화재단에 따르면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견인할 동력은 첨단 과학기술이고, 과학문화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인프라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은 과학교육으로 태어나 연구개발을 통해 성장하며 과학문화를 통해 완성된다”며 “과학문화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인 과학기술이 일반 국민의 생활 속에서 문화 일부로 살아 숨 쉬는 선진 사회의 핵심 키워드”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국가 존립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국민의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데 있다. 사회복지는 경제, 과학 등과 함께 국가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복지계에서는 ‘복지문화’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복지문화’와 관련된 서적은 전무한 형편이다. ‘복지문화’라는 말 자체가 아주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복지가 사람들의 생활 안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복지문화학회를 설립하고 ‘장해자와 복지문화’, ‘고령자와 복지문화’, ‘지역사회와 복지문화’ 등 복지문화시리즈를 간행, 보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간의 생활방식과 태도는 타고나거나 우연히 길러지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가치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적 연대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사회복지가 우리사회에 보편적 가치로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인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이른바 ‘복지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복지’에 집착하면 ‘신용회복 지원’이 ‘신용회 복지원’으로 보인다. 외부로 시각을 넓히자. 타 분야의 사례,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리고 정부에서는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출산ㆍ고령사회 극복을 위해 엄청난 복지지출, 엄청난 고통분담이 필요하다고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이 같은 복지문화 활성화 운동의 동력을 제공하고 국민들을 통합하는 기제로 써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