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마광수 에세이집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분석
< 마광수 에세이집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분석 >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200015504 김종현-2001831013 유경환 Ⅰ. 서 설 작품에 대한 비평에 앞서 작가에 대하여 살펴본다. 마광수 교수는 1951년에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시, 소설, 수필 등 문학 및 그림으로 독특한 미학을 표현해 냄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또한 28세 홍익대 전임강사, 33세 연세대 조교수, 4년 후 부교수로 자리 잡아 열정적인 강의와 재치 넘치는 언변으로 학생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92년 『즐거운 사라』필화 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학교에서도 해직되어 살다가 6년 후 사면 복권되었으며 현재 연세대에 재직중이다. 이 책에서 마광수 교수는 ‘자유 없는 진리보다 진리 없는 자유를 택하겠다’ 라고 말한다. 작가의 핵심사상인 에로티시즘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중적 성의식, 인간미의 상실과 권위에의 복종, 외모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의 우둔함 등을 사회 저변에서부터 의식구조 전체적으로 심도있게 비판하고 있다. 작가가 사회의식을 비판함에 있어 자기관계의 정체성 형성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타자관계(사회조직형성 문제)에서의 올바른 성의식을 사회조직에 융합시키지는 못하였다. 이점에 있어 작가가 제시한 이상적인 성의식(Sex Idea)을 정리해 보고, 작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적 이유와 그 대안 및 해결방안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작가가 제시한 문제의식 이 책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것은 첫째,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자유를 보장할 것. 둘째, 집단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경계할 것. 셋째, 성도덕에 대한 이중적 의식구조에서 벗어날 것 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소수의 권리, 소수의 취향을 억압함으로써 집단의 존재의미를 세우려는 우둔한 지식인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추잡하고 더러운 것으로 규정짓는 사회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의 에세이 1부의 작품 중 이중적 성의식이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가 가장 소중한 진리라고 믿는다. 신약성서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예스 그리스도의 말이 적혀있는데, 나는 그 말을 약간 변형시켜 ‘자유가 너희로 하여금 진리를 발전케 하리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는 특히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는 이중적인 구조(겉다르고 속다른)로 흘러가게 마련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이중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인간을 방해하는 것,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살펴본 결과 그것은 바로 이중적인 성의식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감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아직도 유교적인 성의식과 남성의 성적억압에 의해서 성적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자유로운 인간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덧붙여 작가는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적인 권리 인정 해주는 것은 물론 17세 이상의 나이라면 음주와 흡연의 자유까지도 확보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2. 집단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경계하자는 것은 그의 글 ‘신념에의 해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신념이라는 것은 한 개인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으나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히틀러의 애국적 신념은 독일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고 갔으며, 중세기의 성직자들이 가졌던 성스러운 신념은 무고한 여인들을 마녀로 몰아 불태워 죽이는데 기여했다. 또한 한 개인의 신념 때문에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 예도 찾아볼 수 있는데 1978년 미국의 사이비 종교인 ‘인민사원’의 8백여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미쳐버린 교주의 신념 때문에 교주의 명령에 따라 집단자살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집단적 가치는 잘 드러난다. 가령 고등학교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집단적 가치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자신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였을 때 최악의 선택까지 가능케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인 몰가치적 신념은 소수자에게는 매우 폭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서 우려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매우 무시를 받던 일이나 행동들이 현재에 있어서는 아무런 것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군사정권시대의 장발이나 미니스커트는 사회적으로 매우 기피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요즈음은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성적 취향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변태로 오해 받았던 것들이나 금기시 했던 것들도 요새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러한 것들로 볼 때 우리사회가 어떤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획일화된 신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억지로 집단적 가치나 신념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적당주의적 생활태도와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도면서 살아가도록 권유하고 있다. ‘적당’이라는 말은 중용의 뜻을 포함하는 말로서 나쁜 뜻을 가진 말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나가는 지혜는 ‘성공’보다도 그때그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신념에의한 목표설정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3. 작가는 성과 도덕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중적인 인식이 도덕적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Sex는 자연스런 사랑의 본능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Sex라고 말하는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며 이성적 사랑과 대비되는 언어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심리구조는 퇴폐행위를 조장한다.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고급 지식인 또는 문화인으로 행세하려면 얼렁뚱땅 보수적 도덕군자를 자처해야만 한다는 믿음이 강박관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성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은 중세 봉건사회의 주도세력이 생각하는 sex 관념이었던 ①남녀관계사이 ②부부관계로서 ③번식을 위한 ④ 삽입sex만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억제된 성욕을 강요함으로써 본능에 충실하지 못한 성욕이 음성적이고 퇴폐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작가의 주장에 대한 근거이다. 대개의 문학작품들은 겉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속으로 숨어있는 주제가 다르다. 예를들어 흥부전의 표면주제는 권선징악이지만 이면주제는 부(富)에 대한 끝없는 욕망의 추구이다. 삼국지 역시 표면 주제는 충성과 의리지만 이면주제는 권력획득에의 의지와 잔인한 장면을 통해서 느낄수 있는 사디즘적 쾌락의 추구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Sex만을 위한 성행위, 쾌락만을 위한 성행위를 묘사하는 작가의 Sex Idea는 문학으로서 배척당하고 멸시받아야할 것인지 재고의 여지가 충분하다. Ⅲ. 작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적 이유 한 개인이 정체성(Identity)을 형성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석가모니처럼 어느 한순간 깨우치는 식의 교훈적이고 계도적인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면 왜곡된 자기관계에 빠져 “사회적 인정질서”에서 탈선하게 된다. 사회적인 인정질서라는 신념체계는 한 개인이 조직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조직속에서 요구하는 인간상을 따를 때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사회적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마광수 교수의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요구된 인정질서인 성에 대한 보수적 시각을 비판하고 노골적 성묘사로 인하여 기존 지배세력으로부터 비판, 모욕, 천대 그리고 무시를 받았다. 그러나 지배층의 요구된 성의식에 대하여 자신의 이상을 연동시키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자기억압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의 의식에 떳떳하였다는 말이다. 더불어 사회적 인정질서를 바꾸려는 저항세력을 형성시켰다는 점에서 사회 저변의 성적 소수자(트랜스젠더 등등)들이 내세우는 가치와 발을 맞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인정질서에서 벗어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생각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면 한 개인의 내면적 Idea를 형성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자신이 성의식이 이에 대한 이중적 잣대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도 본능에 충실하며 내면적으로 떳떳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성에대한 심미주의라고까지 생각하며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이점에 있어서 자기관계속에서 벌어진 정체성 형성문제로서 충분히 제3자의 이해를 얻을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조직의 형성에 있어 “타자관계”로 발전되었을 때 사회조직형성의 문제이다. 타자관계는 한 개인이 조직에서 살아가기에 지켜야 할 중요한 질서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자기관계’와 연장선상에서 서로 영향을 주는 규범적 성격의 문제라고 하겠다. 작가는 자신이 주장하는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성의식을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회에 소개했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주장(부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국사회에 내재된 Sex Identity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대부분의 지식층(사회 지배계층)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퇴폐적이고, 외설적인 표현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달방식의 차이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설득방식에 있어서 문학이라는 매개체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겠다. 문학은 대부분 권선징악, 바른생활의 결말 등을 통해 독자를 사회구조내에 잔존시켜야 할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잣대에 비추어 마교수의 글은 외설이라고 부르짓기에 충분하다. 서양소설 “보바리 부인”이나 우리나라 소설 “감자” 등 소위 문학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어진 작품의 결말이 퇴폐적인 여자는 타락의 길을 걷는 계몽적 결말을 맺는다는 점에서 (표현의 강약은 논외로하고) 외설이 아닌 우수문학의 지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마교수는 성에 대한 인간 본연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배척과 퇴폐, 외설문학이라는 마녀의 탈을 쓰게 되었다. 작가 마광수는 교수라는 직업으로 사회의 지도층이자 소위 학벌사회에서의 상위계층범주 안에 속해있다. 우리는 흔히 하위계층(질적 측면이 아님)의 사람들이나 사회적 인정질서 안의 정상적인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적대감과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마교수는 사회의 상위계층이지만 그가 속해있는 사회적 인정질서 안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지 못함으로써 배척당하게 된다. 그 자신의 말대로 자신은 ‘학교에서 왕따’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굳이 자신이 처음부터 사회적 약자인 구조 안에서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사회적 상위계층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사회적으로 적대적인 감정이 있는 그룹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가 누렸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은 그 스스로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그 사회구조 안에서 도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심정적으로 그 사람에게 원하는 역할이 존재하는데 그를 수행하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지위를 막론하고 사회구조에서 그 지위를 박탈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다. 전 IOC 집행위원 이었던 김운용씨는 지난해 체육단체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는 상위계층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청렴결백이라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잣대는 물론 현대 사회가 발전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더욱 강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잣대가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까지 손상시킬 수 있는 측면 까지 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사람이 어떤 독특한 성적 취향이 있다고 한다거나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평가대상에 포함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이러한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아직도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외국에는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처우가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일부 나라는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논쟁을 할 풍토조차 이루어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광수 교수의 성적인 논쟁은 사회적으로 아직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다. Ⅳ. 나의 주장 1. 육체적, 정신적 자유의 보장. 그것을 위한 성적 이중적 잣대를 없애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일단 찬성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겉과 속이 다른 것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가 존재한다. 먼저 사회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역시 당선전과 당선후의 말이 다르고 사회 유명인사들도 이중적 성의식을 비롯하여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고 이것이 개인에게는 잠재적인 스트레스나 억압으로 작용하여 사적이거나 은밀한 자리에서 자신의 감춰진 본능을 표출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중적 잣대를 없애고 자신부터 자유로운 인간상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에는 일단 동의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적 측면에서는 작가는 너무나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데 그 방법론 적인 측면에서는 일단 보수적인 입장이다. 어떤 주장을 펼 때 그 사람은 사회적 질서 안에서 인정받아야 하는게 먼저이다. 그 인정질서 안에 있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은 헛된 구호에 그치기 쉽다. 마광수 교수의 주장은 일리는 있으나 선뜻 따라하기에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주장에 있어서 확신이 있다면 그 표현 방법으로는 일단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성적 이중잣대를 없애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가능성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우리사회의 소수자의 대표적인 장애인 측면에서 생각해 봤을 때 소수에 대한 인식의 전환 같은 측면에서도 이 문제를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성적인 측면만을 위주로 접근하는 것은 다른 측면을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긴다는 면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소년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성적인 이중 잣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성욕이 가장 왕성한 청소년기부터 성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람이 멍석을 깔아놓으면 하던 지랄도 안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과연 그것이 작가의 ·기대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성공한다면야 정말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만약 그것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오히려 정말 자유롭지 못한 인간으로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2. 집단적 가치에의 복종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것은 탈 획일화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산업화 시대에서 지식, 정보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군대문화내지는 과거 획일화된 문화의 잔재인 획일화된 가치에 대한 복종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서 요즘 음악만 보더라도 예전에는 사랑에 관한 노래가 일색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개인적인 문제나 다양한 사고를 반영하는 노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야 말로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과 중국이 요즈음 신흥 강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다양성을 자신들의 무기로 삼고 있는 것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인 어떤 가치를 두고 그것을 쫓는 것은 과거시대의 산물이다. 자신의 다양한 가치관을 전제로 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시 이번문제도 작가의 해결방법차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신념을 갖고 살고 있다. 이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 사람은 어떠한 신념이든 하나정도의 신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할 때 적당히 살아가라고 권유하거나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하는 자세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이 올바른 것인가를 계속 되묻고 그것을 올바로 고쳐나가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사람이 어떠한 것에서 성공하고 안하고는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운적인 것도 따르게 마련이고 오히려 운이 더 크게 작용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하고서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 사람들은 실망을 하게 되고 이것이 신념을 가졌을 때의 잘못된 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떠한 신념이나 믿음을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공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더 많을 수 있음을 안다면 그러한 우연적인 요소를 줄이도록 더 올바른 신념과 그에 바탕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까 싶다. 그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생활의 자세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집단적인 가치를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3. 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질서에 속해있는지 그 바깥쪽에 있는지는 사회가 내세우는 신념(인정질서)이 그 기준이 된다. 신념은 단순히 자기 자신의 믿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신념이 형성되려면 한 개의 성장과정 속에서 사회가 주는 영향이 필요하다.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신념의 근저에 다분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점에 있어서는 작가의 생각을 일견 동의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개인이 어떤 신념체계를 가지고 그 신념이 각자의 정체성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각자의 의식구조 속에서 자연히 자신이 속한 사회에 동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작가와 같이 기존의 인정질서를 벗어난 생각을 가진다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문제는 각 사회가 용인하는 인정질서에 따라 다른 판단이 나올수 있는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신념체계를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표출하는 방법론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골적인 성적묘사는 불법싸이트의 적나라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문자의 영역보다도 훨씬 더 뛰어나게 표현될 수 있다. 굳이 불법적 영역이 아니라 누드라는 장르가 예술의 영역안에 있다는 것에서도 충분히 sex idea를 표출시킬 수 있다. 타자관계 안에서 사회적 인정질서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에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Ⅴ. 맺 음 말 무책임한 자유는 방종을 야기시킨다. 그러한 자유는 사회를 좀먹게 하고, 여러 규범체계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게 된다. 그렇지만 사회가 제시한 인정질서라는 규범체계 안에서 자신의 신념체계에 따라 행동한다면 비난의 소지를 살 여지가 없다. 전술하였듯이 신념이라는 울타리는 개인이 가져야할 규범적 틀이다. 작가의 주장대로 신념이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을 가로막는 감옥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정도 제약은 무시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규범 안에서 최소한의 욕구를 표출할 공간은 충분하고, 다른 사회의 규범체계 안에서는 그 행동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작가의 생각대로라면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인정질서가 너무도 편협하고, 좁다는 결론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또 작가의 논리가 타인관계에 있어서 마찰이 생긴 것을 볼 때 작가의 방법론은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 Sex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정질서에 대한 거창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어느정도 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논의를 통해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인정질서, 우리가 요구받는 인정질서에 대하여 생각해 볼 충분한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최근 들어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에 대한 찬반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사회 저변에서 비 주류층이 새로운 인정질서를 획득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이루어 지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무었인지’. ‘도대체 언제부터 형성되어온 문화인지’. ‘그 문화의 정당성은 누가 부여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마광수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를 통해 충분히 그 근거와 사회 인식의 방법을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윤리적 모순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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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에 대하여 ........ 마광수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다보면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사디스트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비관적인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순진한 아이들이 좋아하 는 명작 동화가 대개 '은근한 가학성(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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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의 해석 ........마광수 <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보드라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올바른 해석 ........ 마광수 < 마조히즘적 쾌락에의 동경 > -- 김소월의 <진달래꽃> < 진달래꽃 >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
민심을 바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 마광수 과연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부정부패 등의 구조적 사회악과 패륜적 살인 등의 도덕적 사회악을 없앨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선 경제발전에 따라 극빈자 수가 줄어들게..
< 행 복 > ................. 마광수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30년도 채 살아 보지 않은 나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감히 말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