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흐드러지게 폈던 4월 어느 날. 보건복지 콜센터(국번 없이 129)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떨렸고,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다. 상담원 김인숙(38)씨의 가슴도 뛰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차근차근 질문을 했다.
사연은 이렇다. 에이즈 환자였던 Q씨는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하루라도 편히 쉬고 싶었다. 사람이 그리웠다. 그러나 돌 볼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용기를 내 30여 년 연락을 끊었던 처남을 찾았다. "폐 끼치지 않고 며칠만 쉬어 가겠다"고 했으나 그날 밤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처남은 앞이 캄캄했다. 일용직 벌이로는 병원비도 댈 수 없었다.
상담원 김씨는 전화를 걸어온 Q씨의 처남에게 정부의 긴급 지원 제도를 소개했다. 갑자기 곤경에 빠진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생활비나 의료비를 주는 제도다. Q씨에겐 의료비 300만원이 지원됐다. 에이즈 환자 요양 기관도 알선했다. 4개월 후 Q씨는 숨을 거뒀다. 김씨는 "콜센터로 전화하지 않았다면 지켜보는 이도 없이 쓸쓸히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며 "마지막 가는 길이나마 외롭지 않았다는 처남의 말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고 말했다.
출범 1년을 맞은 보건복지 콜센터에는 매일 애틋한 사연이 전화선을 타고 흘러든다. 1년간 상담 건수는 57만여 건. 100여 명의 상담원은 매일 헐벗고 병든 이들의 말벗이 되고, 해결사가 된다. 이 중 40여 명은 사회복지사.응급구조사 등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다. 복지관에서 일했던 김씨는 시아버지 병 수발을 위해 활동을 접었다가 병이 완치되면서 상담 일을 시작했다. 사회에 조그마한 기여라도 하고 싶어서였다.
김씨는 더 많은 사람이 '129'를 기억해 주길 바랐다. 정부에 대한 지원 요청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불이 나면 119에 전화하듯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학대, 자살, 복지 문제 등으로 고민한다면 언제나 129를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0명의 상담원이 있는 콜센터의 긴급 지원 상담은 24시간 계속된다. 복지 제도나 건강 상담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지만 밤에 전화번호를 남겨두면 다음날 상담원이 전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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