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사회적 약자 보듬는 "아름다운 판결문"

우리다운 2007. 1. 14. 00:03
[매일경제 2007-01-1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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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주택공사)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 눈가에는 물기가 맺힌다 .
 
우리 모두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듯한 한 판결문이 법조계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법 절차를 잘 몰라 딸 명의로 임대주택을 받아 살다가 주공의 소송으로 1심 패소, 임대주택에서 쫓겨날 뻔한 70대 노인을 구해준 대전고법 민사3부 박철 부장판사 판결문이다.

 

지난 99년 이씨는 중병에 걸린 부인과 함께 충남 연기군 임대 아파트에 5년 계약으로 들어갔다.

 

당시 이씨는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부인을 간호하느라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딸 역시 먼 거리에서 서류를 떼러 다니다가 결국 자기 이름으로 계약하고 아버지가 살도록 했다.

 

계약기간이 끝나자 대한주택공사는 임대를 분양으로 전환하면서 "실제 계약자는 딸인데 무주택자가 아니고 무주택자인 노인은 실제 계약자가 아니니 누구에게도 분양해줄 수 없다 . 집을 비우라"고 퇴거ㆍ명도소송을 냈다.

 

그리고 1심 승소했다. 그러나 대전고법은 10일"75세 노인이 계약체결 과정의 작은 실수 때문에 그 주거공간에서 계속 살 수 없다고 한 것은 '임차인'이라는 법률용어에 집착해 '주거안정'이라는 법의 진정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주공에 패소 판결했다.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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