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범죄 피해보상땐 감형 ‘新유전무죄’ 굳어진다.

우리다운 2007. 2. 25. 20:56
범죄 피해보상땐 감형 ‘新유전무죄’ 굳어진다
[국민일보 2007-02-25 18:35]    

사법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피해자와 합의만 한다면 과거보다는 훨씬 쉽게 상당 부분 감형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법원이 범죄자 교화보다 범죄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범죄 피해를 금전적으로 보상하면 쉽게 감형을 받는 이른바 ‘신(新)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 같은 추세는 본보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의 경제·부패·성폭력 등 3개 범죄 분야 전담 재판부(각 형사합의 24·22·26부)의 유죄판결 가운데 각 100건의 감형 사유를 지난 한 달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전과 및 죄질 등 전통적 양형 사유 외에 범죄자 개개인의 각종 사정 등 판결문에 기록된 모든 감형 사유를 종합해본 결과 피해자에 대한 합의, 공탁 및 피해 변제가 최상위에 올랐다.

 

부패사범의 경우 100건의 판결문에 기록된 감형 사유 중 뇌물 반환, 피해 변제, 합의 등이 가장 높은 37건(이하 중복 산정)을 기록했다. ‘범죄수익 낮음’이 27건, ‘범행 동기 및 경위에 참작사유 있음’이 21건으로 뒤를 이었다.

 

경제사범의 경우 범행 시인 및 반성(52건), 초범(30건) 등 전통적 양형 사유가 1?2순위를 차지했고 범행 동기 및 경위에 참작사유 있음(27건), 피해 변제 및 합의, 공탁(26건) 순이었다.

 

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끔찍한 상처를 남기는 성범죄 사범의 경우도 ‘피해 합의 및 공탁’이 50건으로 범행 시인 및 반성(74건)에 이어 2순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형사사범 외에 각종 부패범죄는 물론 개인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 등의 경제범죄에서도 이 같은 기준이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법원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피해 보상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과거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의 경우 법원이 권력자와 재력가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면서 촉발됐다면 새로운 현상은 금전적 피해 보상이 쉬운 재력가들에게 합법적으로 감형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사실상 양형을 ‘돈으로 사는’ 이 같은 경향은 정당한 죗값을 치른다는 사법정의에도 어긋나며 원상회복과도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은경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중요한 양형 사유로 꼽히는 합의, 공탁 등은 진정한 범죄 피해 복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한국 법원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