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도덕교육의 파시즘

우리다운 2007. 6. 12. 23:26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안에서 자라나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없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을 거쳐 '도덕'과 '윤리'를 배웠다. 지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도덕과 윤리 과목은 다른 과목과 비교해 시험에서 별다른 공부와 노력이 없이도 점수를 딸 수 있는 과목이었다. 한편,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볼 때 수업 중 교과서의 내용에 강한 거부감이 든 적도 꽤 많았으며, 시험에서 답으로 명시하고 있는 보기도 내 생각에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도덕 교과서의 목차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도덕은 가정, 이웃, 학교 생활에서의 예절교육에, 2학년 도덕은 현대 사회와 시민 윤리의 필요성, 건전한 소비 생활, 민족과 국가, 애국•애족, 통일에, 3학년 도덕은 삶의 목표와 가치, 진로•진학, 가정, 친척, 이웃 생활과 도덕문제, 이성교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를 올라가도 달라지진 않는다. 현대 사회와 도덕 문제, 청소년 문제, 공동체, 민족 분단, 통일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어 중학교 때 나왔던 내용의 반복학습에 한정된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시대는 변화했으나 여전히 교과내용은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도덕과 윤리 교육을 통해 국가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예절교육과 국가주의, 애국주의로 요약된다. 예절이라는 것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갖춰야 할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피교육자의 머리와 가슴에 국가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심어줌으로써 '충실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상봉 교수의 <도덕교육의 파시즘>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지적하며 도덕교육이 확실하게 바뀌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철학'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도덕교과가 배우는 학생들에게 지루하고 뻔하디 뻔한 내용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우리네 삶과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며, 고루하고 전통적인 도덕관을 학습시키기 때문이다.

김상봉 교수는 "도덕교과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를 가르쳐야 하는 교과인 까닭에 문제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거의 아무 가르침을 주지 못하면서 무슨 말을 하든 습관적으로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고 말하며, 지금까지의 도덕교육은 국가의 노예를 길러내는 것에 머물렀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중고등학교의 도덕, 윤리교과서를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노예 도덕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가를 밝히고 있다. 지금의 도덕교육은 참된 도덕적 능력의 함양에 있지 않으며 여전히 국가 이데올로기 교육에 머물고 있다. 도덕 교과는 특별히 어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구체적 삶과 연관하여 성찰할 수 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삶의 구체적 문맥 속에서 윤리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적절한 학문은 '철학'이 될 것이며, 현 도덕교과의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물러나지 않는 이상 변화의 조짐은 없을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말한다.

"참된 도덕교육을 위해 합당한 학문은 철학밖에 없다. 왜냐하면 직간접적으로 가치를 다루는 모든 학문들 중에 오직 철학만이 타율적 목적에 봉사하지도 않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도덕적 가치 일반을 그 자체로서 성찰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의 도덕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하신 '빠쑝'님은
직장인이자 학생. 책과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매우 많으며, 이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꾸준한 일상의 글쓰기를 통해 언젠가 철학자 겸 작가가 되길 막연하게 꿈꿔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나의 내면과 대화 하고 있다. 꿈은 이러한 나의 고민의 하나의 결과물로서 생각해볼 뿐이다. http://blog.naver.com/philoholic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 책 속 밑줄 긋기

도덕교과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를 가르쳐야 하는 교과인 까닭에 문제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거의 아무 가르침을 주지 못하면서 무슨 말을 하든 습관적으로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 - 머리말(9쪽)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다.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시대 정신이라 믿는다.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도덕이 아무리 숭고한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노예화하는 장치라면 우리는 그런 도덕을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성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에 앞서는 어떤 도덕도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가치인 것이다. - 머리말(13쪽)

자유인의 도덕은 주관적으로 자기에 대한 관심과 긍지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자기를 위하여 좋은 것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지만, 노예를 위한 도덕은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해 좋은 것, 즉 주인을 위하여 좋은 것을 강요하는 것에 존립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이 점에서 자유인의 도덕이 아니라 노예의 도덕을 가르치는 책이다. (34쪽)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덕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은 일차적으로는 윤리학인데, 윤리학이란 철학의 한 분야이므로 도덕의 어미학문은 당연히 철학이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교과는 어미학문이 없다. 그 대신 학제적 접근이라는 유령이 어미학문의 자리를 대신한다. 학제적 접근이란 여러 학문들이 같이 도덕교과의 어미학문 노릇을 한다는 말과 같은데 여기에 속하는 학문들이 "한국학, 철학 특히 윤리학을 비롯한 규범과학, 정치학 사회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그리고 "지도방법이나 평가면에서는 심리학과 교육학"이 도덕교과에 학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88쪽)

다른 교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학문적 혼합이 유독 도덕교과에서는 학제 간 접근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학문적 이유나 교육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도덕교육의 교육목표 자체가 참된 도덕성의 함양이 아니라 국민윤리의 주입에 있었기 때문이다. (89쪽)

현재 한국의 도덕교육의 핵심 영역은 "인성 교육과 민주 시민 교육" 그리고 "통일 대비 교육과 국가 안보 교육"이다. 도덕교과의 존재 이유는 참된 도덕적 능력의 함양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교육에 있는 것이다. (91쪽)

철학적으로 고찰해보면 한국의 도덕교육이 보여주는 독선적이고 무모한 율법주의는 잘못 받아들인 칸트주의에 기초한다. 즉 그것은 윤리학의 역사에서 칸트의 비길 데 없는 공적은 철저히 외면한 채 칸트의 오류만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도덕교육은 도덕성의 본질을 칸트가 말했던 주체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입법능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칸트가 말했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의무감에서 찾음으로써 칸트가 말하는 도덕을 자유인의 도덕에서 노예도덕으로 뒤바꿔놓은 것이다. (278쪽)

한국 사회 문제를 철학의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김상봉 교수
김상봉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칸트의 <최후유고>(Opus postumum)에 대한 연구로 1992년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대학에서 해직된 후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예아카데미 교장으로 일했다. '학벌없는사회'를 만든 산파로 한국의 학벌체제 타파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도덕교사모임'에 참여하여 도덕교육 혁신에 애써왔다. 현재 전남대 철학과 교수(http://altair.chon
nam.ac.kr/~cuphilos/sung.html
)로 있다.
서로주체성의 이념
김상봉 교수가 착목하는 또 다른 문제 '학벌' - '빠숑'님이 권한,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학벌사회
<도덕교육의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일보 전진하는 데 있어 가장 방해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젯거리인 '학벌'에 대해 분석하고 해결책을 도모해보는 책이다. 도덕교육과 학벌문제는 이 땅에서 가장 오래 묵었지만 기득권층의 탄탄한 영향력으로 개선되기 힘든 부분이다. 김상봉 교수는 이 두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봄으로써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자 한다. 꽤 두껍지만 <도덕교육의 파시즘>에서 보여줬던 그의 날카로운 면모를 관찰 할 수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 나름 고민해왔던 자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도덕 교육의 현 주소를 짚어본다 - TV에서 살펴본 <도덕교육의 파시즘>
KBS 'TV, 책을 말하다' 우리 사회에 묻는다 - 2편 도덕교육의 파시즘
오랜 세월 교육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도덕성.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도덕적 인간인가?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도덕을 자연스레 접하고 받아들여온 사람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는 도덕적 인간인가?"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덕성의 부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 그동안 우리가 받아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도덕교육의 분석을 통해 "우리 안의 도덕"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의 도덕에 대한 상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 - 추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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