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우리다운 2009. 10. 8. 21:44
1975년 한편의 한국 영화가 폴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스팅" 이 가지고 있던 33만 관객동원을 능가하며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최고 이슈 영화로 떠오릅니다.

그 영화는 김호선 감독의 본격 장편영화 데뷔작인 "영자의 전성시대" 였습니다. 일명 호스티스 영화라 불리우는 이 장르의 영화가 어떻게 젊은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눈물과 감동의 영화로 평가되고 흥행작이 되었을까요.

"영자의 전성시대" 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영화입니다. 물론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그런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에) 영화이지만 당시 김호선 감독의 연출이나 이 영화의 이야기는 새로울 수 밖에 없는 그런 영화 였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영자라는 한 시골 여성이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서울로 상경합니다. 처음에는 부자집의 식모로 그리고 버스안내원 그리고 성매매녀로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입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드라마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김호선 감독은 이 이야기의 시작을 창수라는 한남자가 경찰서에 영자라는 자신이 알던 여인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출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또한 영화는 영자가 가정부에서 성매매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빠르게 그리고 명확하게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자집의 가정부로 서울에서 삶을 시작했지만 그 부자집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쫒겨나 결국 봉제 공장으로 들어가 봉제일을 하게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당시 사회상이며 가진자가 없는자에게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기본적인 사회구조와 그것에 대한 부조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적 약자는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으며 이것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제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봉제공장에 들어간 영자는 죽기로 일을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시골에 돈을 보내고 나면 남는 돈은 동전 몇개뿐 밥조차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힘든 생활의 연속입니다. 결국 그러한 생활을 벗어나 영자는 빠걸에서 버스 안내양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보려 노력합니다.

여기서도 그당시 사회적인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라면 새마을 운동입니다. 농촌개발과 소득증가를 위해 시작된 이 운동은 겉으로는 농민들의 협력을 통해 농가의 부흥을 이루고 농촌이 잘먹고 잘살아 보자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역시 이운동 또한 부농의 재산을 늘려준것에 불과하고 실제 부농의 밑에서 살던 대다수의 일하는 농민들은 그다지 달라진 삶이 없었습니다.

이 새마을 운동이 이 후 도시개발화와 산업개발로 번져가며 공장등이 발전하고 나라가 잘살아가는 듯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덕에 농촌의 젊은이들은 돈을 벌어보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기 시작했고 하지만 대다수의 그들에게 안겨진것은 역시나 좌절뿐이었습니다.

물론 이 새마을 운동의 보여지는 겉모습의 영향으로 유신정권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박정희에게 희망을 걸게 만들었으며 장기간 집권의 꿈을 가지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 당시 서울로 올라온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었으며 사회적인 부조리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태반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와 드라마등에서 잘 보여지고 있었고 그 이야기의 소재가 대부분 집장촌과 호스티스의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저분한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었으며 영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자의 불행은 결국 버스안내양을 하다 사고로 한팔을 절단까지 하게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한쪽 팔을 잃은 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니 장애자인 영자를 받아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결국 영자가 선택한 것은 몸을 파는 일. 

자살을 시도하여 죽을뻔 하지만 이 질긴 목숨은 죽지도 못합니다. 왜? 그녀가 죽으면 그녀의 가족들이 살길이 없습니다. 이 잔인한 영화는 다시 그녀에게 모진 인생에 채찍을 가합니다. 

하지만 이 인생의 절망에서 영화는 단하나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 질긴 삶속에 한남자를 안겨준 것입니다. 영자의 모든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녀를 받아들여 결혼까지 하게 해준 것입니다.

이 지겹도록 힘든 삶과 사회의 부조리속에 지칠대로 지치고 망가질대로 망가진 영자의 인생에 한명의 남자를 솎아넣어 그동안의 모든것을 하룻밤의 꿈처럼 다 녹여버린것입니다.

이 역시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던 못되고 치졸한 모습중의 하나입니다. 영화의 사작과 끝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엔 영자만을 바라보고 영자만을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을 바친 창수라는 순수하고 따뜻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창수와 영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이루어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창수라는 남자는 순애보를 대표하고 있는데 그러한 깨끗함은 이미 더러워진 몸의 영자에겐 어울리지 않는것입니다. 그것이 그당시 사회의 모습입니다. 물론 지금이라고해도 별반 다르지 않긴합니다만...


그래서 영화는 창수라는 남자가 영자의 곁을 멤돌고 모든것을 바치려해도 그렇게 할 수 없도록 수많은 장치들을 하고 결국 다른 남자에게 영자를 결혼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그 결혼한 남자와 창수는 친구처럼 형제처럼 관계를 가지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속에서 영자의 행복해 보이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영자의 전성시대" 입니다. 이 제목이 가지고 있는 그 끔찍한 의미는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당시 사회상이며 부조리의 전부인 것입니다.

그것이 김호선 감독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영화가 보여주는 사회의 모습은 그러합니다. 만일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사회의 부조리가 당연시 되고 있었다는 슬픈 현실이었기도 하겠지요.


 
 
 


이 영자라는 개그맨이 있습니다. 그녀의 히트작중 하나가 그녀가 버스 안내원을 하면서 유명 연예인을 그 버스에 태워 꽁트를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영자의 이 프로그램이 바로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의 타이틀과 당시 영자의 직업중 하나를 가져온 것입니다. 당시 영자의 전성시대 흥행스코어는 40만이 채 되질 않습니다. 물론 당시엔 최고 흥행작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방송과 비디오등으로 본 사람을 생각해도 그렇게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70년~80년대 당시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이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영자의 전성시대는 그 유명세에 비해 대중에게 그다지 많이 보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불행한 여성의 이야기가 이 영자라는 개그맨에 의해 그리고 프로그램 관계자들에 의해 하나의 웃음거리 소재로 전락한 것이겠지요. (이 영자나 프로그램 관계자를 비하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차피 그들은 영화를 안보았을 것이고 같은 영자라는 이름과 버스안내원이 사회의 잊혀진 모습중 하나이니 장년층에게 어필하기 좋아서 사용했을 것이니까요)

그렇게 영자가 살았던 시대는 잊혀져가고 있는것입니다. 그저 코미디 프로그램 처럼 말입니다.

영자가 살았던 1970년대 중반 그리고 30년이 흘러 2009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떠한가요. 사회적 약자와 부조리에 대한 보호와 배려는 정부차원에서 정말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요. 

현정권이 들어와 보건복지부의 예산을 줄이고 졸속행정으로 거동조차 불편한 여러사람들이 피해를 보고있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살기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죽기살기로 아둥바둥 거리며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것들에 대해 왜 국민이 더 소리치며 바꿔보려 안달이어야 하는지요. 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고 우리 이웃의 모습이고 바로 자신의 일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소리치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이지요. 그 소리를 들으려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 배부른 현 정부는 과연 1970년대의 영자를 뭐라 불렀을까요?

바로 그들이 부르는 영자는 창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영자는 누나, 동생, 딸, 나의 이웃입니다. 지금 정부의 실 권력층과 여당은 영자가 살았던 시대의 권력층과 여당의 이어짐속에 있는 분들이지요.

영자는 우리사회의 아픔이며 반성해야 할 과거입니다. 지금 정부의 모습을 바라보면 우리사회가 또다시 무수한 영자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그 비극의 중심에서 또다시 슬픈 과거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우리 국민은 그런 슬픈 영자의 전성시대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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