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서로를 인정 하려는 시도가 아름답다..

우리다운 2008. 9. 8. 14:35
- 서로를 인정하려는 시도가 아름답다.

<엄마가 뿔났다> 이번 주 방송들을 보면서 저는 한가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서로를 인정하려는 시도가 아름답다."

다른 이야기들도 함께 어울어져 있기는 하지만, 이번주 <엄마가 뿔났다>의 주된 흐름 중 하나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어머니 이전의 여자인 한자를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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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금 지난 일지만, 한자의 가족들은 한자를 어머니 한자에서 여자 한자로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자의 가출은 단순히 가사노동에 지쳐서 도망치듯 떠난 휴가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을 찾기 위한 휴가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런 휴가를 통해 한자를 엄마 이전의 한 사람의 여자로 인정하려는 시도들이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영일이는 무척이나 불만이 많은 것 같죠.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타인을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타인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려는 시도이기에 그 과정조차 가치가 있어보입니다.



2.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닌 자신의 삶과 가치관이 있는 진규로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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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자와 가족보다 사소하지만 더 많은 다툼을 일으키는 관계는 은아와 진규입니다. 이전의 글을 통해 여러번 은아는 진규에게 은아 자신을 위한 삶을 강요하고 있다고 언급했었는데요. 이런 은아가 진규의 가출이후 진규를 인정하려는 시도들은 은아의 애교나 기타 여러가지 모습으로 보여져 왔습니다.

하지만 은아가 진규를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서로간에 보이는 일종의 기싸움은 상당한 웃음과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다툼이 이전과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한 듯 자신의 삶을 강요하던 은아와 진규의 관계에서 서로의 생각이 부딪히는 다소 역동적인(?) 관계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 두 사람의 다툼 또한 아름답게 보입니다.

(참고로 은아는 영미 또한 며느리로 인정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3. 가족에게서 아빠를 빼앗는 존재가 아닌 친구이자 보호자로 영수를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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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흐뭇한 모습을 보여주는 관계는 소라와 영수입니다. 역시 예전 글들을 통해 소라라는 캐릭터에 대한 호감을 여러번 표현했었습니다. 소라는 가족에게서 아빠를 빼앗아간 여자로만 생각하던 영수를 아빠보다 더 많이 대화를 나누는 친구이자 보호자로 인정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또한 영수 역시 소라를 단순히 전처의 딸이 아닌 친구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하며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 관계 속에서 안에 담아둔 상처가 치유되어가는 소라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입니다.



4. 노년의 사랑을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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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서야 등장하기 시작한 충복과 조여인의 연예관계를 가족들은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이상 사실이 아닐 거라고 여기거나, 노망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이자 사랑으로 인정하려는 것입니다. 나이 드신 가족의 큰 어른으로서만 충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사랑을 하는 한 사람의 남자로 인정하는 모습 또한 아름답습니다.

가족들에게 더이상 숨기지 않아서인지 충복의 연애모습은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갑니다. 이번 주 마지막에는 키스신까지 나왔죠. 상당히 보수적인 층에게 호응을 받는 성격의 가족드라마에 이런 키스신이 나온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충복의 연애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은실이 정태우 군을 후배가 아닌 남자로 인정하고, 연애를 시작했는데요. 이들의 관계 역시 아름답습니다. 토요일 방송 중 키스신을 들킨 이들과 이석의 한바탕 소동은 무척이나 현실적이면서 큰 재미를 불러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 서로를 인정하려는 시도 속에 행복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타인의 모습을 우리가 규정하는 것 이상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인은 타인 스스로의 다양한 정체성,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타인의 모습을 인정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미움, 다툼, 시기, 증오와 같은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타인의 모습 때문에 말입니다.

타인을 타인 그 자체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진규와 은아간의 다툼이나 한자와 영일간의 다툼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 속에 있는 것이 서로의 정체성을 무시하던 때보다 더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서로가 서로를 열린마음으로 인정하는 풍토가 이 사회에 가득하길 바란다면 드라마 속에나 등장하는 헛된 꿈에 불과할까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무시하던 그 때보다 그러한 시도 속에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